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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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인물

이사부(異斯夫)

이사부는 성이 김씨요, 내물왕의 4대손으로, 일명 태종(苔宗) 이라고도 함

이사부는 512년(지증왕 13) 하슬라주 (何瑟羅州)[현재의 강원도 강릉시] 군주가 되어 우산국(于山國)[현재의 울릉도, 독도]의 병합을 계획하고 나무 사자를 많이 만들어 전선(戰船)에 나누어 실었다. 그 나라 해안에 다다라 거짓으로 말하기를 “너희들이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를 풀어놓아 밟아 죽이겠다.” 고 하였는데. 우산국 백성들이 두려워서 즉시 항복했다. <삼국사기, 권4>

우산국은 지금의 울릉도를 중심으로 주변의 부속도서들을 세력권 내에 두었던 소국(小國)이었으며, 우산국의 영역에 대해 『만기요람』군정편에는 울릉도와 우산도는 모두 우산국의 땅이라고 기록하였다.

안용복(安龍福)

조선시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일본에 알린 민간인 영토 수호자

안용복은 1693년(숙종 19) 울릉도에서 어로 활동을 하던 중 일본 어부에 의해 일본 오키섬까지 납치당하게 된다. 그는 일본 호키슈(돗토리현) 태수 앞에서 울릉도(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강조하며 일본인들의 출어를 금지하여 줄 것을 요구했다.

1696년(숙종 22) 일본어선들이 울릉도(독도)에서 어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즉시 쫒아내고, 울릉도(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항의하기 위해 재차 일본 돗토리번으로 건너갔다.

이에 일본 호키슈 번주는 “두 섬이 이미 당신네 나라에 속한 이상, 만일 다시 국경을 넘어 침범하는 자가 있으면 국서를 작성하고 무겁게 처벌할 것이다”며 에도막부의 결정사항을 전했다.

이와 같은 안용복의 활동을 계기로 일본의 에도막부는 일본인의 울릉도(독도) 도해 금지 명령을 내렸는데, 이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시킨 결과이다. 또한 이 사실을 근거로 일본의 메이지 정부도 1877년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과는 관계가 없는 조선의 영토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홍순칠(洪淳七)

해방 후 일본의 독도 침탈에 맞서 독도의용수비대를 조직한 인물

1883년 울릉도 재개척이 시작될 때 강원도 강릉에서 울릉도로 이주해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도서’라는 가리침을 받으며 평생을 울릉도를 위하여 헌신하였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국군에 입대하였으나, 원산근처에서 전상을 입고 1952년 7월 특무상사로 전역하였다.

1952년 7월 말, 울릉도 경찰서 마당 한 쪽에 ‘시마네현 오키군 다케시마’ 라고 쓴 표목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 때부터 독도를 지키기로 결심하였다.

이후 군에서 제대한 청년들을 규합하여 독도의용수비대를 조직하고 사재를 털어 무기 등 장비를 구입하였다.

1953년 4월 독도에 첫 상륙한 이후 독도의용수비대를 이끌면서 일본 해상보안청순시선과 수 차례의 총격전을 감행하였다. 갖은 고난과 악조건을 무릅쓰고 독도를 수호한 그의 활동은 오늘날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6년 5등 근무공로훈장과 1996년 보국훈장 삼일장이 추서되었다.